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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는 중

무통주사 받고 자연분만 성공한 이야기(feat. 초산, 유도분만)

무려 7개월전 4월, 초산&유도분만&무통주사&자연분만 성공 이야기이다.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진통과 진통 사이 정신줄을 잡고 메모를 해둔 나 자신에게 고맙다.
어찌나 생생한지 글이 길다.
 
봄이었고, 자연분만을 위해 예정일 한달 전부터 매일 오천보~만보를 산책하며 나름의 체력을 키웠다.
(다시 생각해도 자연분만은 코어 근력이 필요하다. 임신 시절로 돌아간다면 맛있는 단백질 식단을 챙기고 좀 더 움직일 것이다.)
 
예정일이 코앞인데도 어떠한 변화도 느끼지 못했고, 의사 선생님은 일주일만 더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일주일 후에도 아기는 나올 생각이 없었다.
예정일 +10일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대부분 초산 때는 유도분만제을 쓰더라도 당일에 출산하는 경우가 드물어 주말이 가기 전 목요일에 날을 잡는 것 같았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금요일에 출산한 지인들이 많다!)
 
아침 7시 기상하여 미리 싸둔 출산가방을 메고 8시 병원 도착.
생각보다 허름한 방에 배정받아 주사 바늘을 꽂고 관장을 하고 기다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방에서 출산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간이 침대에서 출산을 한다.
 
유도분만제가 투여되면 '진통'이란걸 느끼겠구나 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DAY1 8:20

촉진제 투여 시작. 아무 느낌이 없다.

 

DAY1 10:00

촉진제 강도 높여. 아무 느낌이 없다.

 

DAY1  10:50

촉진제 강도 더 높여.


DAY1 12:00

주기적으로 약한 생리통 수준의 자궁 수축이 느껴졌다.

 

DAY1 13:10

양수가 터졌고 자궁문은 내진해보니 1.5센치 열렸다고 한다. 통증도 없고 내진도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주기적인 자궁수축은 느껴졌으나 그 강도가 세지거나 주기가 짧아지지 않았다.

 

DAY1 15:45

내진했는데 여전히 자궁문은 1.5센치

 

DAY1 17:20

내진 시 상황이 동일하여 촉진제 투여를 멈추고 다음날 다시 시작하기로 함.
아기도 힘들어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것도 못먹고 마음을 다잡으려했지만 여전히 긴장 속의 저녁을 보냈다.
 
다음날 DAY2 03:00

자다가 갑자기 자궁 수축이 느껴져서 앱을 켜고 주기를 체크했다. 7분 간격으로 진통이 시작되었고, 이때 이제 정말 진통 시작이구나를 느꼈다. 호흡으로 통증을 흘려보냈고 통증의 강도는 강한 생리통 수준이었다. 조금씩 강해졌다. 통증이 주기적으로 와서 아파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어 견딜만 했다. 자연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DAY2 06:00

내진해보니 자궁문이 드뎌 3센치 !! 촉진제를 다시 투여하기 시작했다.
 
DAY2 07:30

자궁문은 3.5센치 열렸다. 통증은 강한 생리통, 자궁 쫙 수축되는게 느껴졌다. 호흡으로 컨트롤 가능한 수준이었다.
내진하는 베테랑 간호사가 아기가 위에 있어서 진행이 느릴 수 있다고, 이제부턴 수축 올때마다 코어에 힘을 줘서 아기를 내려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5센치가 되면 무통주사를 놔주겠다고..
이때부터 성실하게 호흡하고 수축기에 아기를 내려보내는 느낌으로 힘을 주었다.
옆 방에서 고문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정신줄 부여잡고 내 호흡에 다시 집중했다. 
 
DAY2 08:25

통증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곧 아기가 나올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남편에게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남편이 간호사 왔다간지 얼마 안됐는데?라고 반문해서 정말 소리쳤다. 그냥 불러오라고!!
자궁문이 드디어 5-6센치 열렸고, 무통주사를 맞았다. 
찐 진통을 한 번 정도 느꼈던 것 같다. 무통주사를 맞을때 힘을 주면 안되는데 수축기가 곧 다가올까봐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무통주사를 맞고 나면 정말 평온해진다. 더 이상 진통은 고통이 아니라, 수축과 이완의 신호 정도로만 느껴진다.
그 신호에 맞춰 성실히 힘주기만 계속했다.
 
DAY2 09:10

자궁문이 다 열렸다. 간호사가 힘을 정말 잘줬다고 아기가 다 내려왔다고 했다.
너무 뿌듯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다른 산모의 응급 수술로 조금 늦게 오신다고 했고, 진통의 통증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의사가 올 동안 수축기마다 그 동안 했던 힘주기랑 차원이 다른 힘주기를 했다.
비유를 하자면 고개를 숙이고 파워레그프레스를 하는 느낌으로 밀어냈다.
이제 정말 아기가 아래에 걸터있는 느낌이 들 정도가 되었고, 의사선생님 언제오시냐고 다급하게 두 번 정도 찾은 후 의사가 들어왔다.
다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힘을 더 주란다. 이제 정말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마지막 힘을 줄 때는 간호사가 배 위에 올라와 아기를 밀어내주었다. 그땐 그게 전혀 아프지 않았고, 대신 밀어주는게 고마울 뿐이었다.
회음부 절개하고 다시 꿰매는 것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무통주사 효과가 남아있긴 했었나보다.
끝나고 보니 힘주느라 얼굴 핏줄이 다 텨져있었고, 배에도 검붉은 멍이 들어있었다.
 
DAY2 10:40

너무나도 예쁜 아기가 세상에 나왔고 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이 탯줄을 자르고 아기 손발 등등을 확인하는 동안 갑자기 밀려오는 오한에 이불을 덮어도 바들바들 온몸이 떨리는 상태가 된다.
아기를 처음 안아볼때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제대로 들수가 없었다. 아기를 보고 눈물이 났다.
남편이 고생했다고 하며 껴안았을 때 엉엉 울었다.
 
한 시간 쯤 지나면 이 모든 아비규환의 고통이 잊혀진다. 점심을 먹었고 복도를 걸어다녔다.
회음부 절개 부위가 조금 불편한 정도? 어딘가 베여서 따가운 정도인데 밥먹거나 다른 일을 할땐 잊혀지는 정도의 고통이다.
나는 정말 괜찮은데, 산모가 회복할때까지 아기를 안아볼수가 없다고 했다.
출산 전에는 내가 겪을 고통만 생각했는데, 출산을 하고나니 엄마를 찾을 아기만 걱정 되더라..
아기를 바로 못본다고 병실에서 울고 있는 내 모습은 상상도 못했었다.
저녁에 아기가 깨어났다고 수유콜을 받자마자 달려가서 내 아기를 안았다!
 
내 경험은 절대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경험을 한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준비하고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겪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의 경험에 빗대어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지금 그대로 잘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