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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쓰고/책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나는 내용없는 텅 빈 인간일지도 모른다

개성이 또렷한 친구들 사이 색채가 없는 쓰쿠루..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던지는 말과 행동에 의해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걱정하고 고민한다. 그런 고민을 하느라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를 잊기도 하고 어쩌면 나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만이 내가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다자키 쓰쿠루가 20살부터 30대 중반이 되도록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이야기에 비하면, 그가 그룹에서 추방당하고 그룹이 사라질수밖에 없었던 주변사람들의 사정은 너무나..단조롭게 느껴졌다.

쓰쿠루는 모든 진실을 대면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라에 대한 본인의 진심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그 진심의 크기가 늘어난 게 아니라 진실 속에 사실은 쓰쿠루의 잘못은 없었고, 색채가 없는 쓰루쿠가 사실은 누구보다 바르고 모두의 호감을 사는 사람이었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용기를 얻는다.

하이다는 어디로 간거지, 사라는 쓰쿠루를 선택할까? 사라의 선택으로 쓰쿠루는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되는 걸까.

이제 쓰쿠루는 진실을 마주하지 않아도, 마주하더라도, 10여년의 방황?끝에 "텅 빈" 자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남겨지는 것에 대해 조금은 단단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게 내가 이책을 통해 경험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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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다랑 나눈 결론없는 토론이 좋았다.
"'사고란 수염 같은 것이다. 성장하기 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 '그렇지만 그 말은 딱 맞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난 아직 수염은 거의 없지만 어릴 적부터 사색하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과연 그의 얼굴은 매끈한 것이 수염의 흔적도 없었다."
"창의력이란 사려 깊은 모방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슨 일이건 반드시 틀이란 게 있어요. 사고 역시 마찬가지죠. 틀이란 걸 일일이 두려워해서도 안되지만, 틀을 깨부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돼요.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틀에 대한 경의와 증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늘 이중적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예요."

나고야 시내에서 번창하는 사업을 이룬 아카가 동성애자임을 밝히면서,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돼. 그리고 발견할수록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가는 거야."

쓰쿠루가 핀란드 여행을 앞두고 하이다가 두고 간 르 말 뒤 페이(-시로가 연주하던) 레코드 세트를 들으면서,
"나는 내용 없는 텅 빈 인간일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용이 없기에 설령 일시적이라 해도, 거기서 쉴 자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밤에 활동하는 고독한 새가 사람이 살지 않는 어느 집 지붕 뒤편에서 한낮의 안전한 휴식처를 구하듯이. 새들은 아마도 그 텅 비고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공간을 마음에 들어한 것이다. 그렇다면, 쓰쿠루는 자신이 공허하다는 것을 오히려 기뻐해야 할지도 모른다."